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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typiece

Don't let yourself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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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보기/2012 2012/02/19 23:41

끝없이 강의를 듣는다

 위기의 순간에 인간은 늘 혼자다라고 언젠가 여기서조차 말한 적이 있는것 같지만;; 오늘은 위기의 순간이었나보다. 대충 아침 5시 50분부터 지금까지 인강 듣는데. 뭐 한 10시간 듣고 배틀필드 잠깐 하고 위키에 글쓰고 이러고 있었다. 손에는 힘 풀려서 엄지는 잘 못쓰겠다. 뭐지.. 그동안 생물 4시간 화학 3시간 유기 3시간 이렇게 들었는데 생물과 화학은 할만했고 유기화학은 솔직히 이해 못했다. 3-4월에 고급유기 들어야겠다고 겁먹었다. 어쨋건 간에 한 두과목정도는 인강 수강이 예정된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용돈이랑은 안녕할려나. 하여튼 한 20p쯤 필기하고 나니깐 토요일날 쉰 보람은 없어졌다. 내일 또 무슨 고생을 할련지.

 사실 필기질을 늘리는 고전적인 방법으로 공부량을 늘리려고 맘을 먹은 상태였다. 다이어리도 B5도 뭐도 필기량이 전반적으로 늘어서 고3처럼 제트스트림 한다스 써볼려고 이러고 있었는데; 사흘도 안되서  오른손 관절이 전부 아픈거 보면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한시간짜리 의지에서 벗어난다고 애를 쓰고 있는것 같긴 한데. 솔직히 만만하지는 않은것 같다. 고등학생때처럼 해메지 않겠다고 하루하루 애를 쓰고 있다고는 생각한다.

 H씨 전화와서 토요일에는 30분쯤 놀려먹었다. 무지 미안해하면서 잘 놀려댔다.(.) 고의는 아니었다고 하는데 하여튼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서 놀랐고 뭐.. 그랬다. 구닌 놀려먹는건 그만해야겠다. 사실 이렇게저렇게 꼬인게 극에 달했기 때문에 맘이 불편했다. 동시에 한 일주일만 맘편히 보내보기로 혼자 맘을 먹었다. 근데 학원이 11시에 끝낸다잖아? 안될것 같다. 갈수록 피폐해져야 한다니 슬픈 방학이다.

 몇달; 사실 동산고 위키 말고는 손도 안댔으니 근 2년만에 위키질을 다시 잡았다. 그냥 평소대로 사진학. 근데 레퍼런스 없으니 아직도 번역질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다. 근데 위키질도 나름대로 내가 아는거 정리하고 글 하나 만드는 관점으로 생각하면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한 1M짜리 문서 하나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동시에 기껏 배우자고 맘먹었던 피아노랑은 빠이빠이하는것 같다; 개강한다고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뭐.. 컴퓨터를 줄이면 되겠다.


다시 돌아보기/2012 2012/02/12 23:52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교에 올라오면서는 그렇게 기분이 까칠해지는 일을 겪지 못했다. 이는 전반적으로 싫은 것은 피할 수 있다는 논리가 충분히 성립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이런저런 일들에 심란한 한 주였다.  요 몇주간은 그것이 불가능했으므로 상당히 민감해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저렇게 열받고 속썩이다가 한 주를 보낸 것 같다. 체력상태든 정신상태든 꽤나 피폐해져 있었던지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오묘하게 멍한, 그러면서도 내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는 말 그대로의 불만족 속에서 나는 헤메었던 것 같다.

 동시에 핸드폰 의존도 역시 격하게 올라갔고 반작용으로 정신상태는 피폐해졌던 것 같다. 핸드폰에 빠져 있었다. 이후로 나는 꽤 신경쓴 편이었지만 마음만 신경쓰지 몸으로 실천하지는 못하였다. 이러다가는 분명 개강하면 망하겠지. 안될거야 아마... 아니 이게 아닌데. 여하간 정신 차려야겠다. 근데, 과연 이거 쓰다가 자정에 잘 수 있을까? 매일 이것부터 걱정해야 할 주제에 꿈이 큰건 아닌가 싶다...

 나는 살찌는데 상당히 민감한 편인데 간만에 경고수위. 쪼금 열받아 있었던 것 같다. 근데 당장 개강하면 확실히 빠질 것이므로 걱정 안해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워홈이 나쁜건지 내 생활패턴이 나쁜건지 나는 모르겠으나 아마 한달 후쯤 나는 아워홈 어쩌구 이러고 있을 듯 하다. 밥이야기하다 딴데로 새는 것 같으나 학교가 싫어졌다가 장학금발표가 있고서는 학생회가 좋아지고 학교도 다시 좋아졌다. 다시 학교 사랑한다. 장학금행정은 사실 어느 학교든 이상하지만 이번해에는 국가장학금 영향으로 좀 심했던 모양이다. 졸업할때까지 심사할 기세인 국가장학금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본부의 처리방식은 꽤 이상해서 이번에는 학생회가 어느정도 '낚인' 상황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지금도 의문이 가시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예상할 만큼의 금액은 수령하였으므로 학교는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약대를 준비하면서 장학금을 수령하는 것은 매학기 꽤 껄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이렇건저렇건 나는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학교에서 충분한 혜택을 구하고 있으므로 만족한다고 말해야만 하는 것일까 싶긴 하다. 하지만 반수성공한 Y씨가 그랬듯 나도 자퇴서 내러 가며는 미묘한 시선 혹은 그간의 추천서의 가치만큼 눈총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아니 아마도 확실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련다.

다시 돌아보기/2012 2012/02/05 23:57

여기저기 둘러보고 온다

 동아리 전시회의 경우에는 이미 탈퇴한 것으로 처리된 것이므로; 뭐 맘놓고 말할 수 있다. 연영회였다. 이런저런 일을 겪고 결정을 내린 것이므로 후회하진 않겠고. 괜히 불편할까 걱정한 상태로 가서 몇명만 만나고 왔다. 전시회 자체는 그렇게 단시간에 전시를 구성한 것을 보고 이사람들한테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뭔가 아직도 동아리 회원인것처럼 조금 죽치고 있었다. 그렇다고 보고자 했던 사람들이 다 올 리는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있다 움직이긴 했다. 하여튼 그렇게 인사동을 찍고는 다시 남부터미널로 갔다. 간만에 찾은 예술의전당은 돌의 궁전이란 말이 적절했던 것 같다. 사진이 없어서 안타깝지만 나는 맘에 드는 건물이었다. 하여튼 매그넘 사진전을 보러 간거였고. 스토리텔링에 굉장힌 인상을 받았고 J씨 만나서 잘 보고 돈까스 잘 먹고 학원으로 갔다고.

 학원에서는 급격히 여러사람과 안면을 트는데 다른 J씨가(왠 J씨가 이렇게 많은지...) 잠시 떠난 사이의 일이다. 어쩌다보니 의미는 상실했지만 유기보충 가서 이렇게저렇게 고생했다. 제3의 J씨나 H씨 B씨등등. 과연 언제까지 같이 지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새로운사람 만나는데 전같은 부담은 없어서 맘놓고 편하게 지내련다. 오히려 과사람들 만나서 어색했다는건 아이러니. 아니면 진짜 현실. 하여튼 유기보충은 서서 수업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컨디션이 엉켜서 텝스 무너진것과 약속 깨져서 결국 집에서 잠으로 시간을 보낸건 당황스럽다.

 텝스는 엉뚱하게 말렸다. 사실 아침에 적당히 자고 이래저래 컨디션조절이 되긴 했는데 긴장을 확 올린순간 시험지오류로 시험지연이 되더니.. 그대로 끝이었다. 듣기 말리니깐 시험보기 싫어져서 오후에 있는 약속 생각만 하면서 악착같이 풀었다. 나와서는 약속이 깨져서 슬펐다. 맘대로 되는건 쉽지 않은것 같다. 아니 당장 글쓰는것도 자정 넘었다. 나 내일 어떻게 일어나라고! 하여튼 불편한 버스에서 헤메다 간만에 따뜻한 거실(...)에서 적절히 자고 밤을 지나서 월요일이다. 에버노트에서 끄적인건 다 어디로 간건지 모르겠다.

다시 돌아보기/2012 2012/01/29 23:52

정신없이 시험을 보았다.

 시험에 미쳐있는 요즘이다. 오늘은 토클봤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으나 결국 떡진 머리로 시험장 입실에는 성공했다.Orz. 시험은 수능 언어 두배로 연장시켜서 보는 기분이었다. 중학생들과 수능같이 생긴 시험을 30분전에 일어난 떡진 머리로 보고있다니. 세상에.. 한편 수원고등학교는 고사장으로서는 상당히 불편한 곳이었다. 중학교 시절이 새삼 생각났는데 왠지 교실 자체보다는 나보다 나이많던 그 테스터가 생각났기에 기분이 묘했다. 하여튼 고등학교 선생님같은 감독관님과 이런저런 학생들과 시험을 보게 되었고. 결과는 모르겠다. 내심 2급을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3급은 커녕. 기대 안하련다. 오히려 다음주 텝스를 기대하는게 낫겠다.


 설에는 이런저런 서프라이즈를 터뜨렸고. 나는 살짝 행복해졌다. 사진기는 잡지 않았으나 LR은 살짝 잡았다. 사진기를 일주일정도 놓고는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고 한다. 얼떨떨하고 나는 이곳이든 페이스북이건 당분간 싣을 계획이 없다. 어차피 알 사람은 다 아니깐;; 여기에 올려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설 지나고 정말 수험생 하고 있으니 시간은 많이 없겠다. 그래도 시간 배분은 열심히 할련다. 그래야 make a deal...을 실천하겠지.

 친구한테 말했듯. 혹은 내가 직접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든 간에 나는 여러가지 이유를 대면서 약대간다고 나를 채찍질한다고 보았다. 그게 나 자신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기 위함이든. 혹은 그 알량한 자존심이든 뭐든 간에.. 어찌 되었건 SNU에서 떨어진지 1년여 만에 다시 SNU를 꿈꾸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가 있다고 본다. 약대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라고 하면. 나는 그게 있다는 말을 장담치는 못하겠다. 다만 현재 전공에 비해서 하고 싶은 길에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이상적인 인간은 아닌것 같다. 그냥 공부를 비교적 좋아한다고 하면 대충.. 맞다고 치자.


2012, 기록, , 시험, 진로
다시 돌아보기/2012 2012/01/22 00:05

지난 한해의 생활을 정리했다.

 if-else 문으로 생활을 구성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번 수험생활에서 정해놓은 우선순위를 손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고3보다는 여유가 없었으나 이것이 한계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 체력적으로나 공부 상황으로나 선택의 시점이 왔다고 느꼈다. 불편한 감정과 이런저런 대안을 떠나서 나는 내 선택을 했다고 믿으련다. 어쨌건 후회하진 않겠으나 더 바빠지려고 사라져 있었던 여유를 잠깐 찾아오는 것이면 좋겠다.

 이렇게 해서 동아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감정은 분명 선택을 촉발한 스위치 같은 존재였지만.  그 감정만으로 지난 1년을 선택할만큼 내가 어리석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하루정도 생각했다. 원칙에 벗어나지 않는 것은 그럼에도 수험생활의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좀 더 열심히 살기를 바라고 이렇게 선택한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리고 남아있던 감정은 가볍게 정리하기로 했다. 묵어왔던 깊은 감정이었다면 선택이 바뀌었을지는 나는 모를 일이다.

 이래저래 맘을 정하자 마자 많은 사람들한테 서로 다른 연락이 와서 나는 놀라기도 했다. 좋은 사람들은 좋은 말을 해주었다. 여기서는 많은 사람들한테 정말로 미안하다고 말한다. 페이스북에서 담으면 충분히 오해를 담을 만한 글이 되었을 테니 그곳에는 서두만 싣었다. 이곳까지 나를 봐줄 사람들은 드물고. 여기의 글은 정말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아니한 글이므로 보여줄 자신도 없는 듯 하다.

 동아리 활동으로 글은 2주간이나 쉬고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은 내심 의미있는 일이 되었기 때문에 에버노트에서 끝없이 끄적대었다. 그동안 텝스점수가 하나 나왔는데 독해를 1+를 찍어도 총점이 740이 나올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주간테스트에서는 유기화학이 무척 쪽팔려서 나는 담임한테 낯부끄러웠다고 한다. 컴퓨터는 날 싫어하기 때문에 기숙사는 또 탈락했다. 동아리 일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스터디에서는 학교 이름을 자꾸 신경썻다. 나는 참 가식적이다. 다만 학교에, 혹은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공부하긴 해야겠다.
다시 돌아보기/2012 2012/01/07 00:51

핸드폰에 빠져 있었다

 사실 한주 내내 아팠다. 월요일날 부터 이상하게 콧물이 질질거리더니  잘 듣던 슈도에페드린이건 뭐건 듣질 않았다. 몸살인데 몸을 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버틸 수가 없었던 것 같았다. 이틀에 거쳐서 지하철에서 새우잠을 자고선 이제야 나아가고 있다. 근데 이제 또 입김이 나올법한 취미(.)방에서 블로그질 하고 있는것 보면 내일 텝스는 여전히 걱정스럽다. 아픈것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호락호락 공부를 시작할 수는 없다는 마인드가 깔려 있었는지. 이번주는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나는 새삼 나를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내가 나를 위해 공부해오는 편이었는데. 붙잡아야 한다면야.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해야 하겠다. 그냥 지금 생각은 그러하다.


 블로그에 언급된적이 없던 J씨와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그 먼거리의, 긴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처음부터 아는 사람이 있는 건 좋은 일이었다. 최근 몇년간은 한번도 겪어본적 없는 행운이니; 이렇게저렇게 감사하고 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대체로 편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나름이지만. 일단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방금전에도 L씨한테 연락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으로서 편한 이들.  어디서 만난 친구들이나 내가 만나던 사람들은 거진 비슷하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고등학교 친구들은 만나면 반가운게 맞다.  근데 만나기도 힘드네. 개인적이랄지. 아니면 내가 민폐쟁이일지. 솔직히 내심 아쉬운건 사실이다.


 코가 찔찔 나와서 민폐를 끼쳤다. 그렇다고 생각만큼 집중을 잘 하지도 못했다. 병원이나 갈걸 그랬나. 하여튼 6-25는 살인적인 일정이었고 나는 벌써 힘들다. 그나마 화목금 마지막 자습시간이 사라져서 안심하긴 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꽤 편하다?) 주 후반에 본격적으로 빠진 화난 조류들이 통근시간을 야금야금 잡아먹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다 깨버릴까 생각하다가 꾹 참았다. 근데 아마 1월이 가기 전에 다 깨고 별세개씩 다 가져올 것 같다. J씨는 페북의 노예라고 내가 계속 놀려먹었는데 나는 그냥 핸드폰에 빠져 있었다. 첫문단대로라면 나는 정말 반성해야 한다.


 나는 대체로 유기화학 첫바퀴를 절반정도 돌았다. 생물은 약 1/15정도를 배운 듯 했는데 복습은 꾸준하다. 양이 정말 많아서 걱정하고 있다. 사실 학점에서도 적당한 수준만 맞아놔서 공부 많이 안했음을 절감했다. 물리는 아직까진 쉬운데 이건 누구나 쉬운 직선운동이었다. 기출을 풀어도 맞을 기세다. 화학은... 사실 모르겠다. 수석으로 졸업하신 선배(선생님)는 열심히 가르치시고 나도 내 전공이니 열심히 한다. 양자역학을 배워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나 보다. 언어는 사라졌다. 그렇지만 1월 29일에 시험은 볼꺼다. 외국어는 단어만 8일치 봤다. 다른거 아무것도 안한건 정말 큰 오점이다.
2012, In P, 기록
다시 돌아보기/2012 2012/01/01 23:45

들렀다 갔다



 점차 제목의 길이를 늘이겠거니 생각했다. 계속 글은 쌓아가고 있는데 블로그에 손을 대고 있질 못하다.(사실 모바일블로그로 내 글을 복습(?)하는 터라 PC모드에선 잘 안본다.) 정체되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1학기때는 손을 대겠거니 맘을 먹었다. 두어달은 힘들것 같아서 당장 손대겠다는 식의 무책임한 말은 못하겠다. 그냥 나는 그렇게 하고싶다. 어쩐지 희망사항같다. 그렇지만 2011년의 글들은 다 예전 글들로 옮겼다. 쌓인 글들이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은 했는데 - 그래도 무책임하게 비워둔 다이어리와 텅텅빈 상자들보다는 여기에 쓰고있는 두서없는 글이 내 기억력에는 도움이 된다. 그래도 동시에 다이어리 채울려고 노력은 해야겠다. 한편 일과시간이 개판이 된 관계로 나는 한주에 한번 글쓸것 같다. 당장 맨앞에 한 말하고는 배치된다는 점은 나도 안다.

 어머니 친구분들이 들렀다 가셨다. 꼬맹이들의 시간은 간 것 같으면서도 가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나도 그렇게 느껴질것 같아서 신기했다. 새로운 꼬맹이를 보고 쟤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여러 꼬맹이들 덕분에 방은 내가 있을때와는 또 다른(?) 폭격을 당했다. 내 방 상태에 나는 큰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지만 오늘은 좀 놀랐다. 좀 큰 꼬맹이는 으레 예비고1들이 그렇듯, 어머니한테 끌려 왔다. 어머니는 내 고등학교 시절이 어땠는지를 물어보셨다. 그냥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단다'라는 식의 말이 떠올랐는데 그 어머니께서는 '인생은 실전이야'를 원하신 것 같았다. 내 인생부터가 실전이 아닌것 같아서 나는 좀 많이 찔렸다. 그냥 평범해서 평범하다고 말씀드렸지만 별로 와닿지 않는 표정이셨다. 그렇지만 과외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말은 그럭저럭 소신있게 했다.

 2012년이라고 챙겨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말이라고 편지까지 받기도 했다. 새삼 고등학생스러운 분위기였다. 추석때 만큼이나 그냥 말없이 지나가려는 마음은 굴뚝같았는데 편지에 감화되어 나는 이렇게저렇게 많은 말을 했다. 말보다는 글을 쓰자는 것이 내 대체적인 생각이었는데 왠지 실수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전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가. 하고 계속 생각했다.
2012,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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